
영화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를 다른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기존 이야기에서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만 그려졌던 엘파바를 중심에 놓고, 그녀가 어떻게 그런 이미지로 굳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오해와 선택이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선과 악을 단순히 나누기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인물을 규정하고 소비하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1. 오즈의 세계를 뒤집어 보는 관점, 엘파바의 성장과 낙인
[위키드]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오즈 세계를 ‘마녀의 입장’에서 다시 보는 구조입니다. 초록빛 피부를 가진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겉모습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받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환영받지 못하고, 학교에 가서도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적 외형 차이를 넘어서, 소수자·타자화된 존재가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엘파바는 기본적으로 정의감이 강하고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성격입니다. 마법 재능도 뛰어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권력자들과 충돌하게 됩니다. 오즈의 마법사와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안정’과 ‘질서’를 내세우지만, 그 뒤에서는 동물들에게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고,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체제 유지에 방해되는 존재를 ‘위협’으로 규정합니다. 엘파바가 점점 ‘사악한 마녀’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실제로 나빠져서라기보다, 권력에 맞서는 인물을 위험한 존재로 포장하는 정치적 과정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신문과 선전, 소문을 통해 엘파바를 두려운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 “초록 마녀=악”이라는 단순한 공식만 남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악인의 서사는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 놓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2. 글린다와 엘파바: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삶의 방식
[위키드]의 또 다른 축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은 완전히 다릅니다. 글린다는 밝고 인기 많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며, 사회가 좋아할 만한 ‘착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인물입니다. 엘파바는 외형부터 튀고, 직설적이고, 분위기를 맞추기보다 불편한 이야기도 꺼내는 타입입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가 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어떤 삶이 옳은가”보다는 “각자가 선택한 방식에 어떤 대가가 따라오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글린다는 체제 안에서 인정받는 길을 택합니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하며, 공식적인 ‘좋은 마녀’ 역할을 맡습니다. 반대로 엘파바는 체제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려다 ‘악당’으로 낙인찍힙니다. 흥미로운 점은, 글린다가 엘파바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고, 엘파바 역시 글린다를 단순히 위선자로만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서로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복잡한 존중과 서운함, 이해와 오해가 섞여 있습니다. 이 관계는 “정의로운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과 “체제 안에서 영향력을 활용하는 사람” 사이의 긴장을 보여 주면서도, 어느 한쪽에만 정답을 두지 않습니다.
3. 선과 악, 이미지와 진실: 누가 ‘사악한 마녀’를 만들었는가
[위키드]는 기존의 [오즈의 마법사]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받아들였던 선악 구도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나쁜 마녀’ 이미지는 사실 권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 수 있고, 그 안에는 당사자의 선택, 타인의 오해, 체제의 선전이 뒤섞여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엘파바는 실제 행동만 보면 일관되게 약자를 돕고 불의를 거부하는 인물이지만, 기록과 소문 속에서는 위험한 존재로만 남습니다. 이 구조는 현실의 여러 상황과도 겹쳐 보입니다. 한 인물이나 집단이 미디어·소문 속에서 특정 이미지로 굳어지는 과정, 체제에 불편한 사람을 ‘문제 인물’로 몰아가는 방식,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가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편한 서사를 소비하는 습관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위키드]는 판타지 세계를 빌려 이런 구조를 부드럽게 드러내지만, 관객은 충분히 현실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4. 위키드가 남기는 질문: 나는 누구의 서사를 그대로 믿고 있나
정리하면 [위키드]는 마녀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악’이라고 배워 온 것들 뒤에 어떤 서사와 권력이 작동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엘파바와 글린다, 두 인물의 선택과 대가는 “옳음 vs 틀림”의 싸움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답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인물이나 집단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을 얼마나 그대로 믿어 왔는지, 그들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들어 볼 생각은 해봤는지, 그리고 누군가를 쉽게 ‘위키드(사악한)’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위키드]는 단순한 동화 재해석을 넘어, 선과 악, 이미지와 진실, 오해와 선택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