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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 독립운동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싶었던 영화

ssoo1023 2026. 2. 28. 23:09

 

암살을 보러 가기 전에 솔직히 좀 무거운 영화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루는 영화이니 당연히 비장하고 숙연한 분위기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작전, 유머, 반전, 그리고 묵직한 감동이 한 편 안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서 보여준 그 손재주를 이번에는 역사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암살은 독립운동이라는 소재를 오락 영화의 문법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담긴 진짜 감정을 잃지 않은 영화입니다. 1270만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재밌어서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영화 암살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세 사람의 작전, 그리고 얽히는 배신의 냄새

1933년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 조직은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과 친일파 강인국을 동시에 제거하는 암살 작전을 계획합니다. 작전을 이끌 세 명이 모입니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그리고 폭탄 전문가 황덕삼입니다. 여기에 임무 수행을 위해 청부 킬러 하와이 피스톨과 그의 파트너 영감도 합류합니다. 각자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이는 구도는, 도둑들에서도 써먹은 최동훈 감독의 장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구도 위에 배신의 냄새가 처음부터 깔립니다. 임시정부 내부에 밀정이 있다는 사실이 초반부터 암시됩니다.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누군가 일본 측에 정보를 흘리고 있고, 팀 안에서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됩니다. 이 구도가 영화 전반에 걸쳐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독립운동의 역사 안에도 배신과 의심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영화는 정면으로 다룹니다. 화려한 액션과 유머 뒤에 이 묵직한 현실이 깔려 있기 때문에, 암살은 단순한 오락 영화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전지현이 연기하는 안옥윤은 영화의 중심을 잡는 인물입니다. 차갑고 유능한 저격수이지만, 그 안에 자신도 몰랐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드러나는 과정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룹니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하와이 피스톨은 처음에는 돈만 보고 움직이는 킬러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캐릭터에 다른 층위가 더해집니다. 이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긴장이 영화의 감정선을 이끌어갑니다.

경성과 상하이, 시대의 공기를 채운 화면

암살의 배경인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는 영화 안에서 단순한 무대가 아닙니다. 일본 군인들이 활보하는 경성의 거리, 조선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풍경, 그 안에서 일본 장교와 나란히 걸으며 웃는 친일파의 모습. 이 장면들이 작전의 배경으로 펼쳐질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작전이 왜 필요한지를 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좋은 시대극이 하는 일입니다. 암살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입니다. 특히 경성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작전 장면은 긴장감과 박진감이 절정을 이룹니다. 저격, 추격, 폭발이 이어지는 그 시퀀스는 한국 영화 액션 장면 중 손꼽히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 장면들이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되지 않는 것은, 총을 든 사람들 각각의 사정과 감정이 관객에게 이미 전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왜 저기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총소리 하나하나가 다르게 들립니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염석진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입니다. 독립운동 조직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있는 사람. 그의 정체와 선택이 드러나는 후반부는 영화의 온도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이정재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관객이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로 읽히게 하는 연기입니다.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방식, 암살이 선택한 언어

암살이 독립운동을 다루는 방식은 교과서적이지 않습니다. 비장함과 숙연함 대신, 유머와 액션과 반전을 앞에 내세웁니다. 이 선택이 역사를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판단이 바뀝니다. 오락의 형식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그 시대와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만드는 통로가 됩니다. 어렵고 무거운 영화였다면 1270만 명이 극장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그 오락적 외피 아래 숨겨두었던 감정을 터뜨립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늙어버린 사람과, 그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과거. 이 장면에서 영화는 더 이상 유머를 쓰지 않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감정을 조용하고 서늘하게 정리합니다. 화려하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끝나는 구조, 그 낙차가 암살을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 영화는 그 사실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크린 안에서 총을 들고뛰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나면, 관객 스스로 그 연결을 만들게 됩니다. 암살이 재밌는 영화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재밌는 것과 의미 있는 것이 꼭 다른 방향을 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1270만 관객 앞에서 증명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