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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 아무것도 몰랐던 한 남자가 역사의 한복판에 서기까지

ssoo1023 2026. 2. 28. 22:05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이고, 제목도 택시운전사이니 뭔가 따뜻하고 유머 있는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목이 메기 시작했고, 후반부에서는 결국 참지 못했습니다. 장훈 감독은 1980년 5월 광주라는 무거운 역사를 정치적 구호가 아닌 한 평범한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줍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 현장에 들어가 알게 되고, 알게 된 뒤에는 외면할 수 없게 되는 이야기. 택시운전사는 역사가 어떻게 개인을 바꾸는지,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용기를 내게 되는지를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보여준 영화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택시기사 만섭, 광주로 향하다

영화의 주인공 김만섭은 서울에서 택시를 모는 평범한 아버지입니다. 딸과 단둘이 살며 월세도 밀린 빠듯한 살림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까지 가는 데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혹해 손님을 가로채다시피 태우고 길을 나섭니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계엄령이 무엇인지, 그날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만섭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10만 원이 필요한 택시기사일 뿐입니다. 이 설정이 영화를 강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만섭이 처음부터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됐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관객도 그와 함께 광주를 처음 보는 눈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도로가 막히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는 풍경, 텅 빈 거리와 두려움에 가득 찬 사람들의 얼굴. 만섭의 눈을 통해 보이는 광주는 낯설고 무섭습니다. 그 낯섦이 현실의 무게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전달합니다. 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의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기록하려는 기자입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는 그의 모습은, 기록이 왜 중요한지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이 세계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어, 영화가 끝난 뒤 그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광주에서 본 것, 외면할 수 없게 된 순간

만섭은 처음에 빨리 일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괜히 엮이고 싶지 않고, 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주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자신의 일은 아니라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가 바뀌는 과정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 번의 극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조금씩,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외면이 불가능해지는 과정입니다.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 택시기사 태술과 대학생들이 만섭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태술은 만섭에게 밥을 차려주고, 자신의 집에 재워주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함께 다닙니다.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베푸는 그 온기가 만섭을 묶습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두려움을 안고도 거리로 나서는 모습, 부상자들을 돌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만섭의 눈에 쌓입니다. 그 장면들이 쌓일수록 만섭이 처음 갖고 있던 방관자의 태도는 무너집니다. 만섭이 서울로 돌아가다가 검문소 앞에서 차를 돌리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차를 돌립니다. 그 선택이 어떤 계산이나 각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가장 본능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전달됩니다. 송강호는 이 장면을 대사 없이, 표정 하나로 소화합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역사가 되는 방식

택시운전사가 다른 5·18 관련 영화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주인공이 영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섭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한 사람입니다. 용감하지도 않고, 역사의식이 강하지도 않으며,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딸에게 달려가고 싶은 아버지입니다. 그런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냅니다. 이 사실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어떤 순간에는 그 선택을 한다는 것. 영화는 실존 인물 위르겐 힌츠페터에 대한 헌사이기도 합니다. 실제 힌츠페터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날의 택시기사를 찾고 싶다고 말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실제 자료 화면과 자막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 무게 때문입니다. 택시운전사는 1220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입니다. 그 숫자는 단순히 영화가 재밌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1980년 5월을 처음으로 가슴으로 이해했고,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던 것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평범한 택시기사의 눈을 빌려 역사를 보는 방식이 그 어떤 웅장한 서사보다 더 깊이 박힌 것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한 남자가 알게 되고, 알고 나서 행동한 이야기. 그것이 지금도 이 영화가 기억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