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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먼저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한 기록 - 첨밀밀

jjny1023 2026. 2. 11. 21:30

영화 첨밀밀은 거대한 운명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도시에서 서로를 스치며 지나간 두 사람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1990년대 홍콩이라는 빠르게 변하는 공간 속에서, 리샤오쥔과 리챠오는 각자의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꿈은 늘 사랑보다 앞서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이 부족해서 멀어진 관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속도가 달랐기 때문에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첨밀밀은 격정적인 멜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천천히 흘러가 버린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낯선 도시, 같은 출발선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리샤오쥔과 리챠오는 같은 고향 출신이지만, 같은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둘은 타지에서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거리를 걷는 동안 감정은 서서히 쌓여갑니다. 그러나 이 감정은 쉽게 고백되지 않습니다. 리샤오쥔은 고향에 약혼녀를 두고 있고, 리챠오는 홍콩에서 성공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현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빠르게 변하고, 돈과 성공이 중요한 가치로 작동합니다. 그 속에서 사랑은 언제나 조금 뒤로 밀려납니다. 이 영화는 그 미묘한 거리감을 통해, 도시가 개인의 감정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보다 앞섰던 선택들

리챠오는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안정된 삶을 원했고, 성공을 위해 계산적인 선택을 합니다. 리샤오쥔은 보다 순수하지만, 동시에 결단력이 부족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결국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 방식입니다. 이 지점에서 첨밀밀은 흔한 멜로 영화와 달라집니다. 극적인 배신이나 오해가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거리를 만듭니다. 사랑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절실했던 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며, 관객이 스스로 그 간극을 체감하게 만듭니다.

시간이 만든 거리, 그리고 우연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고, 이별을 겪고, 상처를 입으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홍콩의 거리에서 흘러나오던 덩리쥔의 노래 ‘첨밀밀’은 두 사람의 시간을 묶어두는 상징처럼 남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뉴욕에서의 재회는 운명적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의 아이러니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같은 속도로 멈춰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재회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첨밀밀은 결말을 열어둔 채, 사랑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보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랑보다 먼저 흘러가 버린 시간

첨밀밀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사랑의 격렬함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 버린 시간의 현실성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타이밍이 맞지 않아 놓쳐버린 관계를 떠올립니다. 그 감정은 원망보다는 아쉬움에 가깝고, 후회라기보다 이해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붙잡기에는 삶이 너무 빨리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첨밀밀은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다고. 때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보다, 같은 속도로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첨밀밀은 격정적인 멜로가 아니라, 엇갈린 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랑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을 지키기에는 삶이 더 복잡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복잡함 속에서 때로는 사랑을 놓칩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사랑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놓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