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를 보고 나서 - 천재는 왜 자신이 만든 것을 후회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오펜하이머를 보러 가기 전까지 이 영화가 세 시간짜리라는 사실이 살짝 부담스러웠습니다. 핵폭탄 개발 이야기를 세 시간 동안 본다는 게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단순히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의 전기 영화를 찍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를 만들어낸 뒤, 그 결과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영웅인가,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 질문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남자, 그 선택의 무게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이론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동시에 예술과 문학과 철학을 두루 아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영화는 그의 천재성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천재성이 어떤 방향으로 쓰이게 되는지를 따라갑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 정부는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오펜하이머는 그 과학적 총책임자로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세웁니다. 영화가 흥미롭게 다루는 것은 오펜하이머가 이 임무를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그는 핵무기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일이 먼저 만들면 안 된다는 논리,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논리 앞에서 그 우려를 접어둡니다. 로스앨러모스에서의 연구는 순수한 지적 흥분과 함께 진행됩니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류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힘을 다루는 그 과정에서, 오펜하이머는 누구보다 중심에 서 있습니다. 영화는 이 시기를 긴장감 넘치게 그리면서도, 그 흥분 속에 이미 균열이 자라고 있음을 놓치지 않습니다. 트리니티 핵실험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폭발이 일어나는 그 찰나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파. 오펜하이머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힌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 되었다,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이 독백은 단순한 문학적 인용이 아닙니다. 자신이 방금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직감한 한 인간의 고백입니다. 성공의 순간이 동시에 공포의 시작이 되는 그 역설이 영화 전체의 핵심입니다.
히로시마 이후, 감당할 수 없는 결과
트리니티 실험 성공 이후 실제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됩니다. 전쟁은 끝났고, 오펜하이머는 영웅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환호 속에서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감정을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승리를 자축하는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그의 시선에 섬광이 스치고, 피부가 타들어가는 환상이 겹칩니다. 실제 피해를 본 적 없는 그가, 자신이 만든 것의 결과를 감각적으로 감당하려는 장면입니다.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이후 핵무기 경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고, 국제적인 핵 통제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고 반공주의가 미국을 휩쓸던 시기에, 그의 이런 입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습니다. 과거에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었던 이력,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들이 파헤쳐지고, 결국 그는 청문회에 서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이, 그 나라로부터 충성심을 의심받는 상황.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냉정하게 펼쳐 보입니다. 청문회 장면은 영화의 또 다른 축입니다. 놀란 감독은 이 장면을 마치 심리 스릴러처럼 구성합니다. 과학자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의 언어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그가 쌓아온 명성과 업적은 한순간에 의심의 대상이 되고, 그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은 과학이 아니라 감정과 정치를 무기로 씁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역사에 남은 이름, 그러나 끝내 지워지지 않은 질문
오펜하이머는 결국 보안 허가를 박탈당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밀려납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영화가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얼굴을 통해 짐작하게 만듭니다. 명예가 회복된다고 해서 히로시마가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수만 명의 죽음은 그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새겨져 있고, 그 무게는 어떤 훈장으로도 덜어낼 수 없습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를 영웅으로 그리지도, 악인으로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선을 다해 발휘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 결과가 가져올 파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선택은 했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선택한 사람의 의도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이것이 오펜하이머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학과 윤리, 발전과 책임에 대한 훨씬 보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해도 되는가.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지금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AI, 유전자 기술, 기후 변화. 인류는 지금도 자신이 만들어낸 것의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실험 앞에서 느꼈던 그 감각, 경이로움과 공포가 뒤섞인 그 순간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핵폭탄이 아니라 그 질문을 들고 나오게 되는 것, 그것이 오펜하이머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닌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