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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앞으로 가면 자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칸일까

ssoo1023 2026. 3. 1. 01:00

설국열차를 처음 봤을 때 열차 안의 칸들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이게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칸이 바뀔수록 세계가 달라지는 그 구조가 너무 정교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건 열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구나 싶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그 위에 자신만의 언어로 계급과 혁명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얹었습니다. 설국열차는 보고 나서 시원한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입니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를 지금도 이야기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영화 설국열차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꼬리 칸에서 앞 칸으로, 혁명이라는 이름의 여정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류가 살포한 냉각제가 오히려 빙하기를 불러왔고, 살아남은 인류는 영원히 달리는 열차 설국열차에 탑승해 생존합니다. 열차 안은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뉩니다. 앞 칸에는 풍요롭고 화려한 삶이 있고, 꼬리 칸에는 아무것도 없이 통제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꼬리 칸의 사람들은 영양 블록이라는 정체불명의 음식만 배급받으며 살아갑니다. 영화는 이 꼬리 칸의 지도자 커티스가 동료들과 함께 앞 칸을 향해 나아가는 혁명을 그립니다. 커티스를 연기하는 크리스 에반스는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인물을 보여줍니다. 그는 영웅처럼 보이지만 내면에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죄책감이 무엇인지는 영화 후반부에서야 드러나는데, 그 순간이 이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혁명의 지도자를 단순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 역시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사람이고, 시스템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세계가 달라지는 구조는 영화의 가장 영리한 설계입니다. 학교 칸, 레스토랑 칸, 클럽 칸. 꼬리 칸의 사람들이 상상도 못 했던 세계가 그 열차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날 때마다, 관객은 이 열차가 하나의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세계의 경계를 넘는 행위라는 것. 그 과정에서 커티스와 동료들은 자신들이 알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와 마주합니다.

윌포드의 열차, 혁명이 설계된 것이라면

설국열차의 핵심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입니다. 열차의 설계자이자 지배자인 윌포드를 연기하는 에드 해리스는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존재입니다. 그는 커티스의 혁명을 막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허용했습니다. 꼬리 칸의 반란은 열차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것, 그리고 커티스가 다음 열차의 관리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층위로 올라섭니다. 혁명이 시스템 안에 이미 설계되어 있었다는 발상은 불편합니다. 우리가 저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시스템의 안전밸브였다면. 지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저항이 허용되고 관리된다면. 이 질문은 열차 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혁명이 결국 새로운 지배 구조를 만들었다는 사실, 체제를 바꿨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는 과정이 반복됐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묵직하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남궁민수를 연기하는 송강호의 존재는 영화에 다른 시각을 더합니다. 그는 커티스의 혁명에 동참하면서도, 그 혁명의 목적지가 열차의 앞 칸이 아니라 열차 밖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열차 안에서 더 좋은 칸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열차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이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영화는 혁명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더 넓게 열어둡니다. 시스템 안에서의 개혁인가, 시스템 밖으로의 탈출인가. 어느 쪽이 맞는지 영화는 쉽게 답하지 않습니다.

열차가 멈춘 뒤, 설국열차가 남긴 질문들

영화의 결말은 열차가 멈추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결말이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힙니다. 열차 밖의 세계는 여전히 혹독한 빙하입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열차 안의 계급과 시스템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확실하지만 자유로운 것과, 확실하지만 통제받는 것 중에서 영화는 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선택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남겨집니다. 설국열차는 한국 감독이 만든 영어 영화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석권하기 전, 그 가능성을 세계 시장에서 시험한 작품이 설국열차였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봉준호식 계급 이야기가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도 충분히 작동한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기생충에서 지하실과 반지하와 상류층 주택으로 표현된 수직적 계급 구조가, 설국열차에서는 열차의 앞 칸과 꼬리 칸이라는 수평적 구조로 표현됩니다. 봉준호 감독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가 이 영화에서 이미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설국열차는 보고 나서 답이 없는 영화입니다. 혁명은 의미 있는가, 시스템은 바꿀 수 있는가,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한가. 이 질문들은 열차가 달리는 한 계속됩니다. 그리고 열차가 멈춘 뒤에도, 영화를 본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 질문은 계속 달립니다. 불편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라고 했는데, 사실 그게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국열차는 한 번 보는 것보다 두 번 볼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