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 광대가 왕 앞에서 웃음을 팔다가 목숨을 걸게 된 이야기

왕의 남자를 처음 본 게 꽤 오래전 일인데도 이준기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 얼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조선시대 광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과 예술, 그리고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처음에는 가볍고 유쾌하게 시작하지만, 영화가 깊어질수록 이 이야기가 단순한 사극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광대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 자유가 권력과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왕의 남자는 아름답고 서늘하게 보여줍니다. 2005년 개봉해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가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장생과 공길, 줄 위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
영화는 조선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하는 광대패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안에서 두 인물이 중심을 이룹니다. 욕심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광대 장생과, 여자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공길입니다. 장생은 현실적이고 거칩니다. 먹고살기 위해 공연을 하고, 때로는 힘 있는 자들에게 눈치를 보지 않아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공길은 장생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말이 없고 조용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입니다. 두 사람이 한양으로 올라와 저자 거리에서 공연을 하다가, 연산군을 풍자하는 놀이를 선보이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왕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가지만, 역설적으로 그 공연이 연산군의 눈에 들면서 궁으로 불려가게 됩니다. 왕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의 한복판에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광대의 자유는 무대 위에서만 허락된 것이고, 무대 밖에서 그들은 언제든지 소모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감우성이 연기하는 장생과 이준기가 연기하는 공길의 조합은 영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습니다. 친구인지, 형제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그 모호함이 관계를 더 풍부하게 만듭니다. 장생이 공길을 바라볼 때의 눈빛, 공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장생이 반응하는 방식. 이 둘 사이의 감정은 말보다 행동으로 전달되고, 그 전달 방식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연산군과 공길, 권력이 예술을 탐할 때
연산군은 역사적으로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영화 속 연산군은 단순한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정진영이 연기하는 연산군은 광기와 외로움이 뒤섞인 인물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웃고 싶어하고,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를 원합니다. 공길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자유로움이 연산군에게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집니다. 왕이라는 자리가 오히려 그를 가장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공길을 향한 연산군의 관심은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입니다. 왕이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공길은 왕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무대 위에서만 허락된 자유를 무대 밖에서도 유지하려는 몸짓입니다. 그러나 권력 앞에서 그 경계는 점점 흐릿해집니다. 광대가 왕의 총애를 받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순수한 예술가가 아니라 권력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영화 안에서 줄타기 장면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닙니다.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는 모습은, 광대들이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걷고 있는 상황의 은유입니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떨어지고, 줄 위에 있는 한 어느 쪽도 완전히 선택할 수 없습니다. 왕의 남자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가 바로 이 줄타기 위에 있습니다. 왕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과연 자유인지 속박인지를 영화는 끝까지 묻습니다.
1230만이 선택한 이유, 광대의 이야기가 지금도 울리는 까닭
왕의 남자는 2005년 개봉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흥행을 거뒀습니다. 저예산 사극 영화가 1230만 관객을 동원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흥행의 첫 번째 이유는 이준기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공길이라는 캐릭터의 충격이었습니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그 존재감은 스크린을 넘어 사람들의 기억에 박혔습니다. 이준기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고, 그것은 캐릭터의 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흥행의 더 깊은 이유는 영화가 건드린 보편적인 감정에 있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세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감각, 가진 것 없이도 당당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다 결국 잃게 되는 비극. 이 감정들은 조선시대 광대의 이야기이지만, 어떤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어떤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광대들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도 무언가를 꿈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닿는 이유입니다. 왕의 남자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줄타기 장면의 시각적 아름다움, 전통 공연 예술의 화려함, 그리고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가볍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쉽게 소비되고 쉽게 사라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붙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광대는 웃음을 팔지만,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그리고 오래 남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