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시장을 보면서 중간에 한 번 울었고, 끝나고 나서 또 한 번 울었습니다. 두 번째 울음은 영화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저는 부모님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조금 더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한 남자의 생애 안에 녹여내면서, 역사 교과서가 전달하지 못하는 온도를 전달합니다. 국제시장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그 시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흥남 철수에서 시작된 삶, 덕수의 짐
영화는 1950년 흥남 철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피란민들이 배에 오르는 아수라장 속에서 어린 덕수는 아버지와 손을 놓치고 맙니다. 아버지는 막내 동생을 구하러 다시 뛰어들고, 덕수는 어머니와 남은 가족들과 함께 배에 오릅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첫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덕수의 삶을 압축합니다.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이 순간부터 자신의 삶보다 가족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는 덕수의 삶의 터전이자 아버지와의 약속이 담긴 공간입니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이 가게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 덕수는 그 약속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삽니다. 가게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생계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를 위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자, 흩어진 가족의 구심점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입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통해 덕수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냅니다.어린 시절의 이 장면은 나이 든 덕수의 독백과 교차됩니다.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 덕수는 손자 손녀들에게 치이는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 주름진 얼굴 뒤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쌓여 있는지를, 영화는 천천히 꺼내 보입니다. 나이 든 세대의 삶이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그 삶이 실제로 어떤 무게를 가진 것이었는지의 간극. 국제시장은 바로 그 간극을 메우려는 영화입니다.
파독 광부에서 베트남 파병까지, 시대가 요구한 희생
덕수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고스란히 통과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는 서독으로 광부 파견을 떠납니다.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서 석탄을 캐는 일,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의 생활. 영화는 이 장면을 낭만화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그 돈을 고향으로 부치는 덕수의 모습을 담습니다. 서독에서 만난 영자와의 사랑이 이 시기에 피어나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 거창하지 않고 소박해서 오히려 더 마음에 남습니다.이후 덕수는 베트남 전쟁에 기술자로 파견됩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 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 그러나 덕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생 학비를 대기 위해 그는 위험한 곳에 자원합니다. 이 반복되는 패턴,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을 앞세우는 선택들이 쌓이면서 덕수라는 인물의 무게가 커집니다. 영화는 이것을 비극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덕수 스스로도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이 두 장면, 파독 광부와 베트남 파병은 실제로 그 시대 수많은 한국인들이 경험한 일입니다. 영화는 덕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역사책에는 통계로 나오는 숫자들이 영화 안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얼굴이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주변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세대가 실제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국제시장이라는 공간, 그리고 약속의 의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부산 국제시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이 시장은, 아무것도 없던 사람들이 맨손으로 삶을 일궈낸 공간입니다. 덕수가 지키는 꽃분이네 가게는 그 시장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재개발 압력에도 가게를 팔지 않으려는 덕수의 고집을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관객은 압니다. 그것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영화의 마지막, 나이 든 덕수는 텅 빈 가게 안에서 혼자 아버지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버지, 나 정말 힘들었다. 이 짧은 독백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한 장면입니다. 평생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이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처음으로 그 말을 꺼냅니다. 강한 척, 괜찮은 척, 어른인 척 살아온 사람이 혼자 남겨진 공간에서 무너지는 그 순간. 이 장면 앞에서 많은 관객들이 울었고,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국제시장은 세대 간의 이해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삶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킨 사람들. 영화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대신 불러줍니다. 보고 나서 가까운 어른에게 전화 한 통 하고 싶어지는 영화, 국제시장은 그런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