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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하정우 마동석까지 다 모아놨는데, 백두산은 왜 아쉬웠을까

ssoo1023 2026. 3. 23. 01:10

백두산을 보기 전에 솔직히 기대가 엄청 컸습니다.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수지, 카메오로 전도연까지. 포스터만 봐도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쟁쟁한 배우들이 다 모였고, 거기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라는 소재까지. 260억 원짜리 한국 블록버스터라고 하니 재난 영화 하나 제대로 나오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개봉 전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보통 잘 만든 영화는 개봉 며칠 전부터 호평 기사가 쏟아지기 마련인데, 백두산은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찝찝한 마음을 안고 극장에 들어갔고, 나오면서 그 찝찝함이 왜였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영화 백두산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설정은 기가 막힌데, 이야기가 따라가질 못했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한반도가 아비규환이 됩니다. 추가 폭발을 막기 위해 백두산 지하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핵폭탄이 필요하고, 그 핵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북한 무력부 일급 요원 리준평뿐입니다. 남한 특전사 대위 조인창이 리준평과 손을 잡고 백두산으로 향하는 이야기. 설정만 들으면 꽤 흥미롭습니다. 남북 공조, 재난, 첩보, 액션이 한꺼번에 담길 수 있는 그릇입니다. 문제는 그 그릇에 뭘 담느냐인데, 영화는 그 부분에서 방향을 못 잡은 느낌이 있습니다. 재난 영화인지, 첩보 영화인지, 남북 브로맨스 영화인지, 코미디 영화인지 끝까지 정체를 못 찾고 오락가락합니다. 장르의 정체성이 없으니 뭘 기대하고 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영화가 끝납니다. 가장 황당했던 건 인물들의 이동입니다. 황해도에서 백두산까지 어떻게 올라가는지 영화가 설명을 안 합니다. 그냥 어느 순간 거기 있습니다. 텔레포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위기 상황이 극복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미 해결된 결과만 보여주는 장면들이 여러 번 나옵니다. CG 작업이 늦어져서 시사회를 개봉 하루 전에야 열었다는 게 알려져 있는데, 그 촉박함이 편집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병헌 본인도 인터뷰에서 편집으로 잘린 장면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을 정도입니다. 배우들이 찍어놓은 건 더 많았는데 완성본에는 그게 담기지 못했다는 것, 그 아쉬움이 화면에서도 보입니다. 흥행 코드를 너무 욱여넣은 것도 문제입니다. 만삭의 아내, 전역 앞둔 군인, 남북 공조, 미국의 방해, 희생과 감동. 한국 블록버스터에서 흥행했다는 클리셰들을 다 모아놨는데, 그게 오히려 영화를 공식 모음집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관객 평점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건 기대치를 낮추고 들어간 사람들이 의외로 재밌었다는 반응이었지, 잘 만든 영화라는 평가는 아니었습니다. 다음 영화를 기대해 본다는 후기가 많았던 것도 그 방증입니다.

그나마 건진 것들, 이병헌과 하정우의 케미

영화에서 확실히 건진 게 있다면 이병헌과 하정우의 조합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영화에서 가장 살아있는 부분입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리준평은 처음 등장할 때 내부자들의 안상구가 나온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북한 요원이라는 설정인데도 어딘가 밉지 않고, 오히려 응원하게 되는 캐릭터입니다. 하정우는 늘 그렇듯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연스럽습니다. 이 두 배우가 없었다면 영화가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CG와 재난 장면 스케일은 한국 영화 기준으로 분명히 볼만합니다.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도심이 무너지는 장면, 평양을 재현한 장면들은 260억 원의 제작비가 어디 갔는지 눈으로 확인이 됩니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와 비교하면 아직 차이가 있지만, 한국 영화가 이 정도 스케일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4DX나 IMAX로 보신 분들은 재난 장면 체험 면에서는 꽤 만족했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킬링타임 용도로 스케일 큰 화면에서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는 평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지질학 교수 캐릭터는 좀 아깝습니다.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이 역할은 너무 제한적입니다. 초반에 설정을 설명하는 역할이 끝나면 사실상 할 게 없어집니다. 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삭의 아내 역할인데, 이 배역을 굳이 수지가 맡아야 했나 싶을 정도로 분량과 역할 모두 아쉽습니다. 쟁쟁한 배우들을 모아놓고 정작 제대로 쓴 사람이 이병헌과 하정우뿐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낭비입니다.

800만을 넘긴 영화인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백두산은 결국 800만 관객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흥행 실패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쉬운 느낌이 드냐면, 이 영화가 가진 가능성과 실제 결과물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캐스팅, 이 소재, 이 제작비로 이 정도밖에 못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연말 성수기 경쟁작들이 다 망한 덕에 반사이익을 본 부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입니다. 실제로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와 캣츠가 해외에서도 혹평을 받으면서 경쟁이 약해진 시기에 개봉한 게 흥행에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국 블록버스터에 대해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타 배우를 많이 모으고, 제작비를 쏟아붓고, 연말 성수기에 맞춰 개봉하면 된다는 공식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관객들이 그 공식을 이미 읽고 있고, 그 공식대로 만든 영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백두산이 그 한계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싶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병헌과 하정우의 케미 하나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만 해운대 같은 묵직한 감동이나 기생충 같은 날카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들어가시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