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주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남자들은 굳이 볼 필요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꼭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성별 논쟁으로 번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개봉 당시 실제로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별점 테러를 했던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관람객 평점은 9점대인데 네티즌 평점은 6점대였다는 것. 그 숫자 차이가 이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분위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싸움판에 뛰어드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래도 직접 보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지영의 이야기, 낯설지 않은 이유
영화는 1982년 봄에 태어난 김지영의 삶을 따라갑니다. 어릴 때부터 오빠와 다르게 대우받고, 직장에서 똑같이 일해도 다른 취급을 받고, 결혼 후 육아를 위해 경력을 포기하고,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라는 것.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이야기다 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저게 왜 차별이냐고 했을 것입니다. 그 반응의 차이 자체가 이 영화가 왜 만들어져야 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정유미의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지영이 빙의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 보는 순간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늦게 알아채기도 했습니다. 공유가 연기하는 남편 대현도 인상적입니다. 나쁜 남자가 아닙니다. 지영을 사랑하고, 배려하려 하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자신의 어머니가 육아휴직을 반대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지영이 정말 필요한 게 뭔지를 끝까지 조금씩 놓칩니다. 이 캐릭터가 오히려 더 현실적입니다. 나쁜 사람이 아닌데도 상처를 주는 사람, 우리 주변에 훨씬 많은 유형이니까요. 공유가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너무 잘생기고 완벽한 배우가 이 캐릭터를 맡으니까 여성 관객도 남성 관객도 방어심을 덜 갖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빙의 장면들은 원작 소설과 영화가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입니다. 소설에서는 이 장면들이 비교적 건조하게 서술되는데, 영화는 이것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훨씬 감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영의 몸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말을 하고, 취업 준비생이었던 언니가 말을 하는 장면들. 그 목소리들이 지영이 평생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연출이 영화가 원작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솔직히 아쉬웠던 것들
영화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먼저 지영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의 장면들이 너무 나열식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할머니 장면, 직장 장면, 육아 장면, 길거리에서 맘충이라 불리는 장면까지. 각각의 장면은 현실적이지만 이것들이 한 사람에게 모두 집중된다는 점에서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이 가진 이 문제를 영화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한 사람이 겪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압축돼 있다는 지적은 영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결말 처리도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습니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지영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희망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이것이 더 많은 관객에게 닿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김지영들이 그렇게 쉽게 출구를 찾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가 해결책까지 제시하려다 보니 오히려 현실보다 가벼워진 느낌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더 열린 결말로 끝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개봉 당시 CGV 기준 여성 관객이 82%, 남성 관객이 18%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정작 더 많이 봐야 할 사람들에게 닿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보기 전부터 싸움판이 된 분위기가 그것을 만들었고, 그 책임이 어느 한쪽에만 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이야기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저는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페미니즘 영화라는 프레임을 내려놓고 보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는 이념 영화가 아닙니다. 1982년에 태어난 한 여성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그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게 이 영화를 보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엄마 생각이 났다는 남성 관객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엄마가, 내 언니가, 내 친구가 떠올랐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존재 이유가 충분합니다. 보고 나서 모든 게 해결되거나 속이 시원해지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불편함이 남습니다.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요청하는 전부입니다.
367만 관객이 봤고, 그 중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보지 않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남성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이 영화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가 왜 아직도 이야기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그냥 한 사람의 삶 이야기로 보러 가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담담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