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을 보기 전까지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그냥 역사 교과서 속 이름이었습니다. 고문으로 사망한 대학생,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 그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스물두 살이었다는 것, 친구의 연락처를 불지 않아서 죽었다는 것, 그 죽음이 처음에는 그냥 덮일 뻔했다는 것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박종철에 대해 더 찾아봤고, 이한열에 대해서도 찾아봤습니다. 좋은 역사 영화란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속 이름을 진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 영화 1987의 이야기를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사람들,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구조
1987은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닙니다. 박종철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대공수사처장 박처장, 시신 화장에 서명을 거부한 검사 최환, 진실을 취재하는 기자, 그 정보를 바깥으로 흘리는 교도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르다가 조금씩 알게 되는 대학생 연희까지. 한 사건을 둘러싸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릴레이처럼 등장합니다. 이 구조가 처음에는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꾸 바뀌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사건이 한 사람의 용기로 세상에 알려진 게 아니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가능했다는 것을 구조 자체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김윤석이 연기하는 박처장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입니다.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한국전쟁 때 공산주의자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고, 그 트라우마가 그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악인이 자신이 악인이라는 걸 알면 오히려 제어가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 캐릭터를 통해 그 시대의 폭력이 어떻게 정당화됐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최 검사는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실존 인물인 최환 검사는 당시 화장동의서 서명을 거부하며 엄청난 용기를 낸 사람인데, 영화 안에서는 비교적 짧게 다뤄집니다. 하정우 정도 배우를 쓰면서 이 정도 분량인 게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인물이 했던 선택의 무게에 비해 영화에서 그 장면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연희라는 캐릭터, 필요했지만 아쉬웠던
김태리가 연기하는 연희는 영화의 후반부를 담당하는 인물입니다. 정치에 관심 없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87학번 신입생이 점점 시대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이 역사에 감정적으로 연결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이 설계는 분명히 효과적입니다. 연희가 이한열을 만나고, 함께 거리로 나가고, 결국 그와 마지막을 함께하게 되는 과정이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연희 캐릭터가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 전반부의 냉철한 서스펜스와 후반부의 로맨틱한 감성이 온도가 꽤 다릅니다. 씨네 21에서도 1부와 2부로 나눠봐도 무방할 정도라는 평을 했는데, 저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전반부의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다가 후반부에서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전환이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이해하지만,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지점입니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이한열은 분량이 많지 않은데도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실제 이한열이 박종철보다 두 살 어린데, 강동원이 박종철 역 여진구보다 16살이 많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걸 알고 다시 보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화면 안에서는 그 나이차가 크게 티가 나지는 않지만, 캐스팅에서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700만이 보고 나서 일어나지 못했던 이유
영화 마지막, 이한열의 장례식 장면에서 실제 영상이 나오고 그날이 오면이 흘러나올 때 극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 자체가 그 역할을 합니다. 영화적 장치 없이 당시 실제 사진과 영상 앞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이 사건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느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2017년 12월에 개봉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기획됐다가 촛불 이후에야 빛을 볼 수 있었던 영화라는 사실, 그리고 바로 그 해에 30년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광장이 들끓었다는 사실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켰습니다. 1987년의 관객과 2017년의 관객이 같은 감정으로 연결되는 그 순간이 이 영화의 가장 강한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 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1987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구조가 산만하다는 지적, 전반부와 후반부의 온도 차이, 일부 캐릭터의 아쉬운 분량. 이런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해낸 것을 생각하면 그 단점들이 작아 보입니다. 교과서 속 이름이었던 사람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고, 그 시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